하느님의 왜곡된 시선

가서 예루살렘이 듣도록 외쳐라. 예레 2,2 오늘 첫째 독서에서 예레미야가 선포하는 예언의 골자는, 은혜를 잃어버린 이스라엘에 대한 주님의 탄식이다. 함께 흘러가는 분위기와 환경이라는 공동체에 속해있을 때는.. 해야하는 역할과 명확한 임무가 주어져서 그것을 행하고 있을 때는.. 그럭저럭 어느정도는 내가 잘 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 공동체에서 떠나고 주어진 명확한 임무가 없을 때.. 사실은, 그때가 […]

사랑하기 위해 투쟁.

아무리 필요하고, 중요하고, 옳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행함에 사랑을 추구하기 보다는, 비난하고 욕하고 단죄하고 분노하며 죄를 짓고 있다면 그것은 선행을 위한 기회가 아니라, ‘죄 지을 기회’일 뿐인거다. 그것은, 차라리 잘라 버리는 편이 더 유익하다는 것.. 물론, 잘라 버리기 보다는 사랑할 수 있게 되는 편을 더 지향해야할테지만! 다 잘라 버려서 아무것도 없는 인생이 되지 않기 위해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사랑하기 위해 투쟁한다.

턱없이 부족한 사랑

내 속에 인내와 사랑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요즘이다. ‘내 종교가, 교회가 부끄럽고 싫다’라는 말을 하는 신자들을 보면서, 욱하는 마음이… 물론, 최근의 부끄러운 행태를 보면 이해가 안되는 건 아니지만.. 교회가 그들의 것인가..? 그리스도의 몸인 이 교회를 이루는건, 그들을 포함한 우리 모두이다.

먼저 다가와 준 한 걸음

어젯밤은, 그저 귀찮고 재수 없다는 이유로 나 자신을 드러내기 꺼려하는 저에게, 나를 알기 위해 다가와 주고 또 진심으로 따뜻한 마음을 보여준 어느 분의 나눔 때문에 감사하고 또 따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