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빵

우리야 밥이 주식이라 ‘빵’이라 하면 부식이나 특식 같은 느낌이지만, 당시 저동네 사람들에게 빵은 우리에게 밥과 같은 기본 중의 기본 음식이었다.

증거하는 선포

무엇이든 떠들어대며 자랑하고 싶은 욕구가 솟아날 때도 있겠지만, 드러나야 하는 일들에 ‘때’가 있는 경우도 있기에 그분께서 밝히기를 원하실 때까지 감추어 두어야 할 때에는
솟아나는 욕망을 다스리고, 부추기는 주변의 소리에 흔들리지 않으며, 오로지 하느님의 시간을 기다려야하는 ‘고난’의 시기를 참아야 한다.

NOTHING 아닌 삶…

식상할 수도 있을만큼 익숙해진 말씀인데도, 영어로 들으니 식상함이 덜했던 것일까. 강론 때 신부님의 선포에서 마음이 쿵!하고 내려 앉는 느낌이…

그분 말고는 없다

‘일치/통합’이라는 미명 아래에, 모든 것을 존중하고 수용하는 것이 참이라 여기는 세상. 이로 인해 신앙 안에서조차 점차 자라나고 있는 ‘혼합주의’ 요즘 같은 세상에 반가운 표현은 아니지만, 그리스도교 신앙은 그 본질이 배타적인 것이다.

세상이 이토록 좋아졌음에도…

신앙의 지식 수준도 높아지고 지혜와 체험의 나눔으로 마음도 뜨거워지고 넘치는 공급으로 풍요롭게 되었지만, 현실이라는 육신의 세계까지 그 풍성함이 흘러가진 못하는 듯 하다. 중요한 것은, 컨텐츠의 질도 양도 아니었던 거 같다.

주님의 지팡이로…

세상의 부유함으로 돌보시는 게 아니다. 친히 그분의 지팡이를 통해 살펴주신다. 양을 돌보는 목자의 지팡이. 세상에 자랑할 수 있고 칭찬 받을 수 있는, 으쓱-하고 어깨를 들먹일 수 있는 복이 아니다.

머무르고 싶은 마음

살다보면, 잊을 수 없는 체험이 삶 안에 종종 찾아온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그렇고, 신앙 안에서 하느님을 만나는 체험도 그렇고,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하는 마음…

증언의 목적

증언의 목적은 믿음이다. 하지만 때때로 신앙조차 자기만족이나 과시로 이용될 때가 있다. 겉 보기에 성실하고 열심인 듯 보이지만, 자신을 드러내는 것. 혹은, 혼자 만족에 취하는 것. 빛이 아니면서 빛을 내는 척 스스로를 속이며, 사람들이 하느님을 믿게 하려는 것 보다 내가 ‘신뢰받을만한 사람’이 되고 싶은 것.

미사가 미사인 이유

강복 이후 사제의 ‘파견’ 선언으로 인해 미사(missa)라고 부르게 되었다한다. ‘미사’가 가톨릭 신앙의 핵심인 것은, 가장 온전한 예배인 전례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파견에 의해 그리스도인의 삶의 목적이 나타나기 때문. 그래서 파견 때의 선언 내용이 매우 중요하다. ‘Ite, missa 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