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면, 잊을 수 없는 체험이 삶 안에 종종 찾아온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그렇고, 신앙 안에서 하느님을 만나는 체험도 그렇고,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하는 마음…
성찰과 묵상
미사가 미사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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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복 이후 사제의 ‘파견’ 선언으로 인해 미사(missa)라고 부르게 되었다한다. ‘미사’가 가톨릭 신앙의 핵심인 것은, 가장 온전한 예배인 전례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파견에 의해 그리스도인의 삶의 목적이 나타나기 때문. 그래서 파견 때의 선언 내용이 매우 중요하다. ‘Ite, missa est.’
슬기로운 처녀들이 가지고 있던 기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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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라는 울타리 안에서 우리는 성사적으로 모두 동등한 ‘등’을 지니고 있다. 내 의지와 노력과 상관 없이 성사적 은총에 의해 등에 불은 늘 켜져있다. 하지만, 때때로 이 놀라운 은총 때문에 착각하곤 한다. ‘음.. 불 잘 켜져있네.. 잘 하고 있구만 그려..’
흰 옷을 입은 무리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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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를 받고 순교를 당하길 꿈꾸던 때가 있었다. 예수님을 모르는 이들에게 구원의 소식을 전하다가 거절 당해서 목숨을 잃어버리는 것이 내 마지막이길 바랬었다. 하지만 정작 선교지에서 질병으로 죽을 수 있는 처지가 되자 영광스러운 죽음은 커녕, 삶에 대한 집착만 있더라.
예수님, 요즘 어때요? 어찌 지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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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온 뒤, 여기서 만난 너무 귀한 인연들이 많다. 원래 알던 분들이지만 더욱 돈독해진 분들도 있고 새롭게 관계를 이어가는 아름다운 분들도 많다. 또 소셜 미디어를 통해 새로운 관계가 된 분들도 많다. 반면에, 한국에서의 관계들 중에는 변화도 많았다. 필요에 의해서만 연락을 하는 사람, 항상 내가 먼저 연락을 해야 소식을 알 수 있는 사람, 반대로 늘 나보다 […]
성경을 잘라서 읽으면, 요리가 달라진다. 쓴맛을 달게 만들고 싶은 유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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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처지에서도 살 수 있는 비결, 그것이 바로 힘을 주시는 그분 안에서 가능하다는 말씀이다. 내가 원하는 것, 나의 어떤 뜻과 지향을 위해서 힘을 주는 그분 안에서 모든 걸 할 수 있다고 격려를 땡기고 싶지만, 사실 이 구절의 본질은..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던 아니던, 성공하던 망하던 상관없이 잘 살 수 있는 힘. 그것이 바로 믿음의 삶이라는 것이다. 성경을 잘라서 읽으면 안되는 이유는, 이렇듯이 위로를 만들어 쥐어짜고 싶은 유혹이 있기 때문이다.
모세와 예언자들이 기록한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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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면서도, 다른 이에게 나누지 않고 홀로 독점하고 있다면.. 정말 내가 만난, 내가 사랑하는 그분이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고, 예언자들도 기록한 바로 그분이 맞는지 진지하게 돌아봐야 한다.
뙤약볕을 감사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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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을 위해, 교회를 위해…라고 말했지만 사실 나는, 나를 위해 일한 것이었다. ‘뙤약볕 아래에서 온종일 고생’만 했다는 건, 나를 위한 수고가 그만큼 힘들었다는 말이었다. 처음의 내 마음, 처음의 그분과의 약속, 그것은 사라지고 온전히 ‘나’만 남아버리니 모든 것이 다 달라져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