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높이기 위한 낮춤

사람들의 연민을 타겟 삼아 자신을 낮출 때 사람들의 관심과 인정을 동시에 얻어낼 수도 있다. 많이 연약했던 과거의 나도 그랬었고,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이런 류의 사람들을 본다. 교만도 잘 따라가다보면 인정욕구나 낮은자존감 등에서 온다. 결국 이 또한 연약함이자 아픔이고 상처다. 교만한 사람이든,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든, 모두 상처로 앓고 있는 사람이라는 건… 구원자이신 예수님의 손길이 필요한 환자라는 말과 같다.

우리에게 베푸시는 분

그분께서 우리를 부르신 이유는, 나를 위해 무언가 열심히 좀 해보라는게 아닌, 주님께서 베푸시는 것을 받아들이기 위함인 것을…  무언가 열심히 행하기만 하다가 지쳐쓰러지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시련과 부르심은 세트메뉴!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 부르심 받았다. 각자의 소명에 따라, 어떤 이는 직무사제직을, 어떤 이는 봉헌생활을, 어떤 이는 혼인으로, 어떤 이는 독신의 삶으로.. 첫번째는, 우리에게 주어진 소명을 식별하는 것이며 그 이후에는 소명의 본질에 충실히 사는 것이다.

벗었던 옷을 챙겨입고…

그렇게 되돌아간 생업의 현장에서 다시 찾아오신 그분을 만났다. 그 생업의 현장에서 처음 주님을 만났던 것처럼… 찾아오신 그분이 주님임을 알게되자 가장 먼저 주님을 향해 뛰어들었다. 생계의 터전인 바다와 밥줄 도구인 배와 그물을 버리고…

성삼일 시작!

아이들에게 잔소리처럼 자주 이야기하는 것 중 하나, “예수님이 우리 주애(이레)를 너무 사랑하셔. 이게 가장 중요한거니까, 이건 잊어버리면 안돼 알았지?” 이 땅에 오신 것부터, 비난과 무시는 물론 죽음에 이르기까지 온갖 수모와 고통을 감당하신 모든 것이.. 이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셔서..” 오늘 복음의 시작 부분에서, 그분의 이 지독한 사랑을 표현한 구절에… 내가 그분을 지독하게 붙잡고 따르는 이유를 […]

심판 기준에 대한 환기

일반적으로, 나쁜 짓(하면 안되는 짓)을 행하는 것을 죄를 짓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하지 말라는 것을 안함으로써 죄로부터 양심의 자유를 취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복음에서 예수님의 말씀은, 금지 조항들을 ‘하지 않은 것’에 관해 전혀 언급이 없고.. 선을 행하지 않았다는 소극적 태도만으로도 벌을 받는 심판 대상이 된다는 충격적인 기준을 제시한다.

지독하게 살자

거짓 예언자처럼 다가오는 것은 사람뿐만이 아니다. 온갖 사상과 가치관들이 사람보다 더 무섭게 다가와 속삭이며 유혹하고 데려간다. 주변 사람들, 세상의 흐름과 분위기.. 뒤쳐질까 두려운 마음 때문에 분별없이 휩쓸려 가는 자신을 발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