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님, 저는 주인님께서 모진 분이시어서,
심지 않은 데에서 거두시고
뿌리지 않은 데에서 모으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마태 25,24)
불연듯 이 대사가 요로코롬 다가왔다.
“하느님은 모든지 다 하실 수 있는 분이시니까
알아서 해내실거라 생각해서 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분은 전능하셔서 모든 하실 수 있으시니,
굳이 내가 애써 뭔가 하지 않아도..
하느님께서 알아서 다 하시겠지..
어련히 알아서 잘 하실까..
나는 그냥 내 몫을 잘 간직하고 있으면,
하느님이 알아서 씨뿌리고 거두시고 하시겠지..
이렇게, 하느님을 아는 그 ‘앎’이 어긋났을 때,
나름의 신앙 마저 엉망이 될 수가 있다.
믿음이라는 달란트를 받은 신앙인들은
그 믿음을 살아냄으로써 믿음이 성장하고 자라난다.
신앙이란,
땅에 짱박아두고 나 홀로 간직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활용하여 30배 60배 100배로 불려가야하는
열매 맺는 삶으로의 초대이다.
쫓겨난 종은
주인이 누구인지 제대로 알지 못하였고,
주인은 그릇된 앎을 지닌 종을 책망하였다.
주어진 믿음을,
활용하여 살아내지 않고 묻어두는 것,
하느님에 대한 ‘그릇된 앎’ 때문일 수도 있다.
열심한 신앙을 쫓는 사람들 중에
자기 신앙만 깊게 파는 사람들을 종종 만난다.
하느님의 뜻, 교회의 가르침을 찾고 따르려 하면서
사람들을 가르고 거리를 두고 판단하면서,
‘신앙에 장애가 된다’는 무서운 핑계를 댄다.
하느님의 뜻과 교회의 가르침은,
정작 그런 이들을 사랑으로 품고 데려오라 하는데
장애가 되기에 벽을 치고 홀로 아리랑이라니…
신앙의 내공이나 기력이 부족해서
아직은 신앙의 힘이 내 삶 밖으로 나가기 어려운 경우라면
이해할 수 있다. 부담이나 죄책감을 주고 싶지 않다.
하지만, 나름의 뜻을 찾고 살아가려고 애쓰면서도
홀로 아리랑을 춤추는 사람들 가운데에서 많은 경우가,
자기의로움이나, 선민주의라는 오류에 빠지기 쉬우며
그것을 인지하고 벗어나기에도 어려움이 생긴다.
내가 알고 있는 확실한 ‘앎’은,
‘나는 하느님을 잘 모른다’이다.
그래서 우리는 함께여야 하느님을 알 수 있다.
나 부터도 그렇듯, 완벽한 사람은 없다.
분명 누군가에게 나는 걸림돌이 되기도 할거다.
하지만.
천국 문 입구에 적혀있다는 문구를 기억해야 한다.
“Group only”
믿음을 땅에 묻지 말고,
Group 으로 만들자.
Come! and S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