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의 역사 안에서 하느님께서 하신 일 중 가장 위대하고 거룩하고 그분께서 기뻐하셨던 일은 바로 ‘창조’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삶에서 가장 숭고하고 거룩하고 중요한 일은 무엇일까?
당연, ‘창조’이다.
미사, 기도, 말씀, 사랑.. 이러한 것들이 중요한건 따져 물을 것도 없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면 바로 ‘인간생명’이다. 이는 하느님께서 친히 아들을 통해 보여주셨다. 이 세상에서 생명 보다 귀한 것은 없다. 하다못해, 하느님 마저도 이를 위해 당신의 생명을 내어놓으셨다.
인류 역사 안에 항상 문제가 되어온 영역은 바로 ‘성과 생명’이다. 가장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가장 강력한 사탄의 타겟이 되는 건 당연한 일이겠지. 평신도 한명 후려치는 것보다 신부 한명 후려치는 것이 효과적인 전략이듯, 섹스를 쾌락을 위한 게임으로 전락시키고 생명에 대한 존엄성과 책임을 파괴시키는 것만큼 하느님을 강력하게 괴롭힐 수 있는 일은 없을 것이다.
사람들은, 신학생들이 신학교에서 생각을 바꾸고 때려치는 것을 큰 유혹이라고 걱정을 하는데, 신자들이 성생활에 대한 무질서와 무관심으로 생명의 가치가 훼손되는 것이 훨씬 훨씬 훨씬 훨씬 더 큰 유혹이고 심각한 일이라는 걸 모른다.
낙태는 ‘여성의 권리’라고들 말한다. 자기 생명도 자기꺼인 세상에서, 지 몸에 붙어있는 세포라고 하니.. 뭐 그리 대단히 놀랄 일은 아니다.
문제는, 이러한 생각들이 그리스도인들에게서도 나온다는 것이다. 누군가에겐 애석할지 모르겠지만, ‘낙태를 할 수 있는 경우’라는 것은 없다. 죽이느냐 살리느냐 이 둘 사이에서의 선택일 뿐이다. ‘무작정 낳으라니? 무책임하다!’는 문제점에는 백퍼 동의한다. 하지만 그 문제 때문에 낙태가 허용될 수는 없다.
생명문제, 성문제. 특히 낙태와 섹스에 관한 문제는, 성직자, 수도자들만 외쳐서 될 일이 아니다. 왜냐면 이미! ‘결혼도 안하는 사람들’이 ‘알지도 못하면서’ 하는 소리로 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꽤 많은 신자들이 ‘신부님들은 결혼을 안하니까 쉽게 생각하고 쉽게 말한다’라며 생명문제를 ‘가정사’, 성문제를 ‘침대에서의 일’ 정도로 치부해 버리고는 하는데… 그래서 생명과 성 문제는 평신도들 특히 결혼한 사람들과 여성들에게 소명의식이 무겁게 요구되는 부분이지 싶다.
결혼도 안한 사람들이 성 문제, 출산 문제 이야기하면 자기들과 무관하니 쉽게 말한다며 듣지도 않으니까.
남자들이 낙태나 피임에 대해 반대해 봤자 ‘싸지르고 책임도 지지 않는 한남’들의 짓는 소리일 뿐이니까.
그럼에도 모두가 외쳐야 하지만, 좀 더 ‘먹힐 수 있는’ 영역으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 좀 더 무거운 책임감을 갖을 필요가 있지 싶다. 나는 결혼했으니까 섹스와 출산에 대해 좀 더 당당하게 ‘내 일로써’ 말할 수 있다. 그렇듯, 낙태에 대해 좀 더 당당하게 ‘내 일로써’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의식있는 멋진 자매님들이 뾰롱뾰롱 더 나타나셨으면 좋겠다.
교회를 따르지만, 생명과 성윤리적 가르침에는 동의하기 어렵다는 것은, 교회를 따르는 것이 아니다. 세상이 바뀌었으니 생명과 성에 대한 교리도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배교와 다름이 없다.
누구든지 율법을 전부 지키다가 한 조목이라도 어기면,
율법 전체를 어기는 것이 됩니다. (야고 2,10)
보아라, 내가 오늘 너희 앞에 생명과 행복, 죽음과 불행을 내놓는다. (신명 3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