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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이 교회에만 계신 것도 아니고 어디서든 계시는데 우리가 꼭 모일 필요는 없지 않냐는 물음을 보면.. 신 존재는 믿지만 종교가 굳이 필요치 않다는 말로 들린다. 물론, 신을 믿지만 교회를 믿지 않는 사람들을 단죄하는 의미는 아니고, 적어도 교회에 속해 있고 교회를 따르는 사람이라면 예배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알고 있었으면 한다.
가톨릭에서는 미사 중심의 전례라는 표현을 주로 사용하기 때문에 예배라는 표현은 마치 개신교의 용어라 잘못 아는 경우가 많은데, 예배는 하느님께 대한 마땅히 드려야 할 신앙공동체의 기본이자 핵심이고 전부라 할 수 있는 본질적 행위이다. 우리가 흔히 ‘전례’라고 표현하는 것은 ‘교회의 공적 예배’를 의미하고, 그 중 ‘미사’는 예배 중의 으뜸인 예배이다.
하느님께서 모세를 통해 이집트에서 종살이 하던 히브리 민족을 탈출 시킬 때, 예배가 탈출의 중요한 원인임을 말씀하셨다.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파라오에게 가서,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고 말하여라. ‘나의 백성을 내보내어 나를 예배하게 하여라.
탈출 7,26
한마디로, 코로나건 코로나 할아버지건 하다못해 전쟁이 나더라도 교회는 예배를 중단해서는 안되며 중단할 수도 없다. 예배는 우리의 생명이며 존재 이유이다. 오죽하면 그것을 위해 따로 선별하여 평생을 헌신하는 ‘사제직’이라는 것이 마련되어 있을까!
코로나 때문에 ‘온라인 미사’라거나, ‘인터넷으로 미사를 본다’는 표현들이 생겨났다. 삐딱하고 완고한 나로선 불편한 말인게 사실이다. ‘어쩔 수 없이’ 온라인으로나마 전례의 현장을 시청하여 ‘아무것도 안함’보다는 나은 것을 선택하는 것이지, 마치 인터넷이나 TV로 미사를 시청하는 것이 전례나 예배를 드리는 것으로(혹은 대체하는 것으로) 오인되는 경우를 보면 안타까울 때가 많다.
첨언하면, 교회가 이 급작스러운 시즌을 대처하는데에 있어서 가정에서 대송을 바치는 방법보다 스트리밍 된 미사를 시청하도록 집중하게 만든 탓도 있지 않나 싶다. 이 점은 개인적으로 참 많이 아쉬운 부분이다.
전례는 공동체가 공적으로 드리는 예배다. 공적인 예배는 예식과 집전자, 그리고 하느님의 백성의 모임이 기본 조건이다. 그러니 어떤 상황에서도 공적 예배를 멈춰서는 안된다는 건 신앙에 있어 가장 중요한 기본이다.
그렇다면, 이런 팬데믹 상황에서 종교는, 완고하고 무식하게 밀어붙여서 예배를 강행해야 하는걸까? …. 아니, 그래서도 안된다.
우리 신앙인들은, 세상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도록 부르심 받았다. 세상에 있지만 세상에 속하지 않으면서도 세상을 등져서도 안되는 골치아픈 영적소명을 지니고 있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뱀처럼 슬기롭고 비둘기처럼 순박한’ 자세이지 싶다.
올 초에도 그랬고, 지금도 일부 교구에서 잠정적으로 신자들에게 미사 참례를 막은 것은 ‘예배 중단’이 아니다. 정확히는 ‘신자들과 함께하는 미사’가 잠시 불가능해 진 게 맞는 표현이다. 예배는 중단되지 않는다. 하느님의 백성을 대표하는 사제들은 멈추지 않고 하느님께 거룩한 예배인 미사를 봉헌해 왔고 또 그럴 것이다. 우리는 그 미사를 ‘특정한 기간’동안 참석하지 못하기 때문에, 다른 것으로 ‘대신’ 때워야 하는 거라고 보면 될 듯 하다.
주님께서 택하신 목자인 주교님들이 교회를 잘 이끌어 가시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잠정적으로 전례 참석 못한다고, 혹은 미사를 왜 중단하지 않느냐고 목자를 탓하는 어리석은 실수를 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어떤 결정이든 그것은 ‘일시적인 시련’일 뿐임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결코 예배는 멈춰질 수 없고, 변화되지 않을 것이다.
그 어느 것도 예배(전례)를 대신할 수 없다. 세상이 바뀌었으니 예배도 온라인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은 큰 유혹이다. ‘잠시’ 인내하며 기다릴 순 있어도, 예배를 온라인으로 완전히 전환한다는건, 신앙의 본질을 흐리려는 유혹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육신을 지닌 인간 존재가, 육신을 부정하고 정신으로만 신앙생활하겠다는 건 말도 안되는 일이다. 허긴 요즘엔 존재하지 않는 ‘무엇’과도 연애를 하고, 가상의 존재와 VR을 통해 성관계를 하며 쾌락을 가지는 탈육신의 세상이 되었으니 신앙에 위협이 되는 것도 크게 놀라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작은 유혹들이 우리의 신앙을 조금씩 흔들고 있다. 그리고 이것들이 모이면서 조금씩 신앙을 버리고 떠나고 외면하게 된다. 하나씩 타협하고, 양보하고, 마치 그것이 선이고 사랑인 것처럼… 그렇게 조금씩 멀어져 갈 것이다. 이 혼돈의 카오스 속에서 이 말씀이 기가 막히게 강력하게 다가오고 있는 요즘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어 내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마태 24,13
전통적으로 우리 교회는,
‘선교 & 순교‘ 두 가지 기둥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신앙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세상인가.
지금이야 말로 순교의 정신이 드러나야 할 때가 아닐까.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도록 하십시오.
여러분의 적대자 악마가 으르렁거리는 사자처럼
누구를 삼킬까 하고 찾아 돌아다닙니다.
1베드 5,8
내 신앙만 지키기도 어려운 세상이지만,
나부터 잘 챙겨야 남도 도와줄 수 있는 거다.
혼자 살 수 없고, 같이 살아야 한다.
그래서 함께해야 하고, 모여야 하고, 예배해야 한다.
대신, 기다려야 할 때는 인내도 필요하다.
“Thy Kingdom Co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