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서 예루살렘이 듣도록 외쳐라.
예레 2,2
오늘 첫째 독서에서 예레미야가 선포하는 예언의 골자는, 은혜를 잃어버린 이스라엘에 대한 주님의 탄식이다.
함께 흘러가는 분위기와 환경이라는 공동체에 속해있을 때는.. 해야하는 역할과 명확한 임무가 주어져서 그것을 행하고 있을 때는.. 그럭저럭 어느정도는 내가 잘 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 공동체에서 떠나고 주어진 명확한 임무가 없을 때.. 사실은, 그때가 바로 진짜 본 모습이 나타날 때다.
배를 타고 항해를 할 때는 배가 흘러가면 나도 곧 흘러가기에 멈춰있다는 느낌이 잘 들지 않지만, 배에서 내려 홀로 헤엄쳐야 할 때는 내가 얼마나 무능력하고 더디고 멈추어 있는지 명백히 드러난다.
그러니 배에 다시 올라타야 한다거나, 배에서 절대 내리면 안된다는 말이 하고 싶은건 아니다.
찌질한 내 모습을 봤다면,
기억해야 한다.
주님께서는 왜 적나라한 예언으로 탄식하실까? 바로, ‘기억하라’는 것이 아닐까? 내가 어떠했는지.. 그리고. 그런 나를 주님께서 어떻게 사랑하셨는지…. 기억해야한다.
오늘 독서의 첫 시작은 너무나 애잔하다.
“네 젊은 시절의 순정과 신부 시절의 사랑을 내가 기억한다.”
사실, 이스라엘이 하느님 앞에서 젊은 시절의 순정과 신부 시절의 사랑을 드러낸 적은 없다. 항상, 불평과 불만과 배신의 연속이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그것을 순정이라고, 그런걸 사랑이라고, 그렇게 애틋하게 기억하고 계신다.
하느님의 시선에는 왜곡이 있다.
사랑이 지나치게 과하게 담겨버린 나머지, 개떡같은 이스라엘의 과거 마저도 사랑스럽게 기억하신다.
죄 덩어리인 개떡같은 나를 사랑스러운 아들로만 기억하시는 것도 그분의 사랑 가득한 왜곡된 시선 때문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