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저는 아니겠지요?

이번 사순시기는 정말이지 지독하게 메마른 광야를 지나는 느낌이다. 벌써 3주째 주일미사를 참례하지 못하고 TV로 미사를 ‘구경’하고 있으니, 영혼의 양식인 성체를 받지 못해 갈증이 생기면서 쓸데없는 물질적 욕구로 이 영적 갈증을 채우려는 유혹이 찾아오고 있는 요즘이다. 그러던 중에 오늘 주님의 수난기 복음을 읽다가 머무르게 된 대목은…

그들이 음식을 먹고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
그러자 제자들은 몹시 근심하며 저마다 묻기 시작하였다.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
마태 26,21-22

예수님께서 잡히시기 전날 밤, 마지막으로 제자들과 식사하는 도중에 하신 말씀. 밥 먹는 자리에서 할 이야기는 아닌거 같은데, 제자들의 반응 또한 썩 만족스럽진 않다. 스승인 예수님이 배신자로 인해 팔아넘겨질 거라 말씀하시는데, 제자들의 관심은 그저 ‘그게 나는 아니겠지?’라며 자신의 체면만 생각하다니.. 스승이 팔려가는 거 보다, 내가 나쁜놈이 아니길 바라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은 어쩌면 인간 깊숙한 곳에 자리한 매우 자연스러운, 지독한 이기심이 아닐까 싶다.

전염병 때문에 하루에도 몇백 몇천의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는 상황을 바라보면서, 처음에는 뜨아하며 놀라던 것이 이제는 저 놀라운 수치가 슬슬 익숙해져간다. 처음엔 전염병 확산에 대한 긴장과 두려움 그리고 교회생활에 지장이 생기면서 오는 불편과 짜증 등 복잡한 감정을 느꼈는데, 어느덧 이 마저도 슬슬 익숙해지는 듯 하다. 여전히 영혼은 목마름을 느끼고 있지만, 이렇게 서서히 ‘익숙함’이라는 늪에 빠져들고 있는건가 싶은 생각도 든다.

예수님의 수난을 앞두고도 자신의 체면만을 염려했던 제자들의 모습에서, 현재의 이 위기를 살아가는 내 모습이 투사된다. 수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전례에 동참할 수 없고, 실물경제에 까지 영향을 끼칠텐데.. 위기 조차도 자연스럽고 익숙하게 되어가자 그저 ‘적당한 내 입장’만 살피고는 안주하려는 내 모습 말이다.

‘에이씨~ 내가 배신자가 되면 안되는데..’

이런 제자들을 보며 혀를 찰 입장이 아니다. 전혀 다르지 않은 내 모습을 보며 고구마를 10개는 먹은 느낌이다. 하지만 넓고 깊고 측량할 수 없는 주님의 사랑은 언제나 그렇듯 이런 내 모습에 위로와 격려와 희망을 심어 주신다.

친구야, 네가 하러 온 일을 하여라. (마태 26,50)

자신을 팔아넘기기 위해 찾아온 제자 유다에게 예수님께서는 ‘친구야’라고 부르셨다. 그분께서는 정녕 끝까지 모두를 친구로 여기셨고, 끝까지 사랑하셨다. 이런 예수님의 이해할 수 없는 사랑 앞에서, 이기적이기만 했던 내 모습은 무너져 내릴 수 밖에 없다.

그들은 무엇 때문에 예수님을 따랐던가.. 그것을 자주 기억해냈다면, 제자들의 태도는 다르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나 또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답이 나온다. 내가 왜 주님을 믿고 따르고 있는지.. 그것을 기억한다면, 끝까지 친구로 부르시고 끝까지 사랑하신 그분을 위해서, 내가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는 바로 나오니까.

+주님, 당신을 따른다고 하면서..
당신의 일과 계획이 아니라, 나의 안전과 계획만 염려하였습니다.

‘저는 아니겠지요?’라는 이기적인 물음이 아니라,
‘어떻게 해야합니까?’라는 물음으로 당신과 함께하고 싶습니다.

살펴주시고, 인도하여 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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