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찌 하느님이 ‘탄생’할 수 있는가? –
여러 교부들이 반대하기도 했지만,
그것을 굳이 ‘탄생’으로 표현하는 이유.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친히
‘완벽한 인간’으로 육화되어 오셨기 때문이다.
Verbum caro factum est.
한계가 없는 그분께서
한계 자체인 ‘살덩이’가 되신 것.
그것은 모든 것 자체이신 분이
그 모든 것을 내려놓아 비우며 보여주신
완벽한 겸손이다.
오직 하느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
그토록 우리는 그분이 필요하다.
결코 우리는 오를 수 없는,
온전히 그분에게만 의지해야 하는 존재.
창조주가 피조물인 인간에게 의지해야만 하는 ’아기’로 오신 것,
그렇게 그분은 의탁의 모범을 몸소 보여주셨다.
모든 것을 가지고도 모든 것을 내놓을 수 있는 이유.
그것은 오직 ‘사랑’.
Deus caritas est.
그 사랑으로 올해도 또 오셨다.
아니, 사실 성탄이 중요한건 아니다.
그분은 날마다 내게 오신다.
성체를 통해, 말씀을 통해, 숨결을 통해
인간 아기로 오신 것처럼
여전히 비천한 인간 육신으로 오신다.
더럽고 초라하고 보잘것 없는 구유
나, 바로 나라는 살덩이로 육화되어 오신다.
머물곳이라고는 누추함 뿐인데,
그 마저도 괜찮다시며 내 안에 오신다.
언제쯤 그분께 괜찮은 방 하나 내어 드릴 수 있을까.
하지만 그분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하시다.
“난 괜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