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을 지내며

 

대림을 지내며,
그리스도의 오심을 묵상하며,
그분의 삶을, 그분의 모범을,
면밀히 들여다 본다.

어째서 그분은 이 땅에 오셔야만 했던가.
어째서 그분은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조용히 나셨던가.

성탄. 그분의 오심을 기다리며,
기뻐하고 즐거워하지만, 그냥 ‘우리끼리’였다.

신앙을 한다면서,
고상하게 앉아서 주접을 떨고 앉았도다.

많이 주신 사람에게는 많이 요구하시고,
많이 맡기신 사람에게는 그만큼 더 청구하신다.
(루카 12:48)

나는 많이 가진 이가 아니라 생각했다.
그래서 좀 더 의무와 부담이 덜하다 여겼다.
그랬더니 주님께서 한가지를 알려주신다.

“너는 믿음으로서 나를 가졌으니,
모든 것을 가졌지 않니?”

더 많이 가진 이들이 많고,
더 깊은 소명을 받은 이들이 있으니,
나는 아니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단 하루더라도,
신앙으로 그리스도를 모신 이라면
결코 ‘적게 가진 이’일 수 없다.

그랬다. 그리스도인이란,
전부를 가진 이였다.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리스도인이라 불리우는 것이 부끄러울 정도로
내 삶은 그리스도와 많이 떨어져 있다.

그분이 오신 이유가 무언가.
성탄을 기뻐해야 하는 이유가 무언가.
그리고 그 이유가 지금 내 삶에 어떤 의미인가.

다시 들여다 본다.

그리스도로 가득 찼으니,
가진 모든 걸 나눠야 했다.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내게 주신 기쁨을 누리는 것 뿐만이 아니라,
그분이 오신 이유처럼,
나 또한 누군가에게 이유가 되어주어야 했다.

나는 능력이 없다고,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더 나은 이들을 부르시라고,
그렇게 외치며 부끄러워 숨었다.

비천하고 비참하고 무쓸모인 나이기에.
나 따위에겐 자격이 없음을 충분히 알기에.

예수님을 사랑하기에,
내 생명과 삶을 모두 그분을 위해 드리겠다고.
세상에서 예수님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그렇게 호언 장담을 하던 나인데.

실은,
그리스도인이라고,
천주교신자라고,
예수 믿는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참으로 부끄러울 지경이다.

“주님.. 저는 자격이 없습니다.”

이렇게 주절대며 고개를 떨굴 때,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맞아. 너는 자격이 없어.
그래서 내가 왔지.”

자격 없는 나를 위해 자격으로 오신 주님.
그분이 자격이 되어주심이 나를 살게 한다.
자격 없는 나이기에, 주님이 간절히 필요하다.

신앙을 한다면서,
고상하게 앉아서 주접을 떨고 앉았도다.

가진 자로 살고 있으면서,
나눌 줄 모르고 혼자 즐기느라 정신 팔린 삶에,
잘난척 떠들기만 하는 오만한 삶에,
사랑으로 맴매를 해주신 주님.

고마워요.
당신께 바라는 것은 사랑 밖에 없으며,
당신이 바라는 것도 사랑 밖에 없기에,
더 사랑하길 간절히 원합니다.
당신도, 사람도.

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어떠한 것도 자랑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내 쪽에서 보면 세상이 십자가에 못 박혔고
세상 쪽에서 보면 내가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갈라 6: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