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움이라는 유혹

“주님, 새술은 새부대에 담아야 하듯, 뭔가 이 새 시대에 맞는 새로운 방법 같은게 있을까요?”

자주 빠지는 유혹이 있다. “뭔가 새로운게 없을까? 더 확실하고 더 나은 무언가가 없을까?” 슬럼프에 빠졌을 때라거나 게으름의 늪에 깊게 빠졌을 때, 나름의 정당성 부여를 위해 새로운 것을 찾으려는 유혹에 쉽게 빠지곤 한다. 오늘 복음은, 지금 또 이런 ‘새로움’을 갈구하고 있는 나에게 명확하게 응답하시는 하느님의 음성이 담겨 있다.

첫째는 이것이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그러므로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마르 12:29

예수님께서 첫째가는 계명을 말씀하시면서 신명기 말씀을 인용하셨다는 것은, 구약의 말씀이 무시해도 되는, 폐기해야 할 ‘구닥다리’가 아님을 보여준다. 당시 많은 군중들은 예수님을 보며 ‘새로운 권위의 말씀’이라고 칭송하였지만, 사실은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그분은 기존의 말씀을 외면하지 않았고 오히려 ‘제대로’ 따르셨으며 그것을 증명해 내셨다. 단지, 당시 종교지도자들이 모델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에 그것이 새롭게 보였을 따름이겠지.

있던 것은 다시 있을 것이고 이루어진 것은 다시 이루어질 것이니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이란 없다.
코헬 1:9

새로운 것이 있을리 만무하다. 물론 시대에 따른 표현의 다름과 양식은 있을 수 있지만, 여전히 가야 할 길은 하나다. 길이며 진리이고 생명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을 향하는 것. 그분 말고는 답이 없다. 그리고, 계산하지 않고 아껴두지 않고 망설임 없이 모든 것을 다하여 그분을 사랑하기 위해 삶을 내던지는 것. 그것 외에 그분이 우리에게 바라시는 1번은 없다. 누구에게는 그것을 바라지만, 나에겐 좀 다른 것을 바란다거나 하는 마음 따위 애초에 그분은 가지고 계시지 않는다.

구실을 찾으려고 계속 ‘뭔가 다른게 없을까?’라는 고민을 붙잡고는, 오히려 충실해야 할 본분에 소홀하며 시간을 허투로 보낸다. 첫째가 무엇인지 명확히 내려져 있는데, 그것을 망각하고 다른 첫째를 찾아보려고 어슬렁 거리고 있다. 불연듯 예수님께서 지금 내게 이 노래 가사처럼 말씀하실거 같다는 느낌이 든다.

“지금도 이해 할 수 없는 그 얘기로 넌 핑계를 대고 있어”

새로운 것을 갈구하려는 유혹, 그것으로 지금의 불완전함과 나태함과 게으름과 불충실로부터 도망치려는 비겁함, 그것을 향해 말씀은 또 내 악함을 쪼개고 쪼갠다. 한편으론, 그분께서 늘 변하시지 않는게 참 다행이다. 그분은 처음부터 계셨고, 늘 동일하게 계시며, 앞으로도 그렇게 계실 분이시기에…

처음부터 있어 온 것 우리가 들은 것 우리 눈으로 본 것 우리가 살펴보고 우리 손으로 만져 본 것, 이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 말하고자 합니다.
1요한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