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긋지긋하게 힘든 인간과의 관계, 그리고 거기서 오는 상처와 어려움을 벗어나서, 그냥 하느님만 바라보며 하느님과 나 단 둘만 존재하듯 평생을 살아가고 싶어 한참을 고민하던 20대 중반. 찾고 찾아 고민 끝에 도달하고픈 곳을 찾았으니 ‘트라피스트 수도회’였다. 평생을 침묵 속에 고행과 기도와 노동으로 하느님만을 향하고 싶은 마음에 어렵게 그곳을 두드렸으나 안타깝게도 한국엔 남자 공동체가 없었다. 하지만 이미 세 명의 형제가 스페인 공동체에서 양성 중에 있으니 원하면 스페인 공동체를 통해 입회할 수 있다는 여자 수도회 장상 수녀님의 말씀에 부랴부랴 수녀님을 찾아갔다. 공짜 1박 2일 피정 기회를 주시면서, 반나절을 수녀님과 깊은 영적 교류를 나누었다. 내 삶 전체 여정을 한 번에 한 사람에게 모두 이야기 해보긴 처음이자 마지막, 그리고 수녀님의 깊고 놀라운 여정을 들으면서 재미와 감동을 얻었더랬다.
그런데 그 긴 시간의 대화 끝에 수녀님께서 내게 주신 충고이자 제안은 좀 충격스러웠다. 수도성소가 잘 맞을 거 같기는 한데, 좀 더 자신에게 여유를 주면서, 집으로 돌아가 세상을 더 누려보지 않겠냐고… 뭔 수녀가 성소 고민하는 이에게 세상에 가서 놀라고 한다냐! 놀라기도 실망하기도 서운하기도 했지만, 뾰족한 수가 있나. 그냥 돌아왔더랬다. 눈물을 엄청나게 흘리며 하늘을 향해 삿대질을 엄청 했더랬다. 세상을 누리라고? 10대 때부터 안누려본 게 없는데 뭘 더 누리라고… 놀기도 지겨운걸..
그렇게 시간이 흘러, 그 장상 수녀님 덕분에(?) 지금 나는 사랑하는 와이프와 딸 그리고 갓 태어난 아들 이렇게 가족이라는 성소를 살아가고 있다. 결혼 했을 때도 그렇고, 딸을 임신했을 때도 그렇고, 여자 수도회에서 매일의 기도마다 우리 부부와 배속의 아이를 위해 기억해 주었다. 그리고 그곳은 이제, 이따금씩 찾아가 혼자 피정을 하는 나의 영적 외딴곳이 되었다.
첫째 독서를 묵상하면서, 갑자기 이 시절의 일이 불연듯 떠올랐다. 옛 일기를 펼쳐보며, 그 당시의 내 억울함이 얼마나 컸던지 생각이 나더라. 왜 내 인생은 좀 해보려고 해도 이렇게 걸림돌만 주시냐고 화를 내며 ‘이러느니 차라리 병걸려 죽어버리겠다!’라며 수녀회를 나오자마자 줄담배를 와장창 피워댔다. ‘이러면 하느님도 슬프시겠지?’라는 생각으로, 울면서..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으니, 그에게 알맞은 협력자를 만들어 주겠다.
창세 2,18
하느님이 만들어 놓고도 혼자 있는 것이 좋아 보이지 않았단다. 그런 존재가 인간이니, 서로 함께 있어도 문제가 발생하는건 어쩔 수 없는 섭리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홀로 존재할 수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 목적지가 하느님이라 하더라도, 인간을 피해 하느님 뒤로 숨는 것을 하느님은 허용하지 않으신다.
‘주님 저는 인간을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요. 하느님만 사랑하겠습니다.’
거룩한 척 포장했지만, 결국 두려움과 연약함을 피해 도망치겠다는 강한 의지였다. 매정하게도 그분은 단호하게 ‘안돼’라며 나를 돌려보내신다.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듯, 사랑하기 두려워 떠는 나에게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라 하신다. 그 무리는 정말 이리 떼 같이 느껴지지만, 그 가운데 ‘협력자’가 존재한다는 것을 나는 미처 믿지도 희망하지도 못했더랬다. 협력자가 반드시 배우자 일 필요는 없다. 영적 지도자든, 맨토든, 혹은 친구 오빠 동생 형 누나 형제님 자매님이든… 곳곳에 마련해 두신 협력자들을 하느님의 섭리라는 시스템 안에서 묘하게 만나게 된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던데, 한편 사람이 짐승보다 못하기도 하다. 허나, 꽃이거나 짐승이거나 그런 사람을 사랑하신 분이 하느님이고, 그 인류를 위해 그분은 오셨고 구원하셨다. 모두를 안을 수 없지만, 한 사람씩 안다보면 많은 사람을 안을 수 있는 품이 되겠지… 한 사람씩… 그렇게 함께..
천국문 위에 붙여있다는, ‘Group Only’라는 글귀를 기억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