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타나엘의 경건함

필립보가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내가 보았다.
요한 1,48

무화과나무는 키가 크고 잎이 무성하여 그늘을 만들어 주는 나무로, 팔레스타인 기후에서 잘 자라며 열매를 제공해주는 소중한 존재입니다. 성경에서 무화과나무는 종종 이스라엘 민족을 상징하며, 율법에 비유되기도 합니다.

나타나엘은 무화과나무 아래에 머무르고 있었는데, 이것은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율법과 하느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경건함을 의미합니다. 당시 종교지도자들은 남들 앞에서 기도하며 자신을 자랑스럽게 여겼는데, 그에 반해 나타나엘은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홀로 하느님께 청원하며 은밀한 시간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죠. ‘골방에서 기도하라’셨던 예수님의 말씀이 떠오르는 대목이네요.

홀로 주님과 은밀한 시간을 자주 가졌던 나타나엘에게, 예수님은 ‘참 이스라엘 사람이며 거짓이 없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은, 위선된 믿음이 아니라 홀로 하느님을 경외하는 경건한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해 주신 겁니다. 조용히 하느님만을 바라봤던 나타나엘은 그것을 알아차린 예수님 앞에서 그분을 알아보게 되었습니다.

나타나엘은 얼마나 성실하게 주님을 믿었기에, 예수님에게 저런 찬사를 받을 수 있었는지.. 나타나엘과 나 자신을 비교하기에는 짬이 너무 안되네요. 골방에서 은밀히 주님과 시간을 갖는 데에 열심하기 보다, 때로는 아니 꽤 자주 의무감 때문에 기도하고 있으면서 말이죠. 그럴 때 마다, ‘주님 제가 지금 뭘하고 있는건가요.’라며 스스로의 한심함에 한숨이 나오곤 합니다.

나타나엘은 믿음의 사람이고, 참된 약속의 자손이었습니다. 어쩌면 그는, 정치적 메시아가 아닌 진정한 메시아를 고대하며 기다렸던것은 아닐지.. 시메온 예언자처럼 말이죠. 인내, 나에게 가장 부족한 덕목입니다. 가장 힘든 것이기도 하고요. 나타나엘을 통해, 인내는 믿음 없이 할 수 없는 것임을 깨닫습니다. 결국엔 부족한 제 믿음의 문제군요. 하지만 하느님은 성실하십니다!

주님께서 나의 간청을 들어 주시고 주님께서 나의 기도를 받아들이신다.
시편 6,10

주님, 믿을 수 있는 믿음 조차 부족한 저에게 믿음을 보태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