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 나중에 온 저자들은 한 시간만 일했는데도,
뙤약볕 아래에서 온종일 고생한 우리와 똑같이 대우하시는군요.’
마태 20,12
누구도 사주지 않았다면 한푼도 못 벌고 공쳤을텐데
포도밭 주인을 잘 만나 일을 하게 되었다.
지금은 나름 주제파악이 꽤 된 편이어서,
그저 하느님한테 내팽김 당하지 않고
옆에 꼭 붙어있을 수만 있다면 성공한 인생이라 생각하고 살지만..
한동안은, 딱 저 일꾼들의 투덜거림이
가슴 속에서 떠나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
‘주님, 제가 당신을 위해! 교회를 위해!
그렇게 열심히 희생하고 고생하며 일하였는데…
이게 뭐에요!?’
울엄마아빠 눈에만 귀한 아들이었지,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던
별 볼 일 없는 그지발싸게 같은 토마스
그런 나를,
목숨을 지불하여 사주신 분이 계셨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 덕에 포도밭으로 부르심을 받았고
신명나게 기쁘게 온 마음과 온 힘을 다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다른 이들과 자신을 비교하게 된다.
같이 일하는 일꾼들은 물론이고..
포도밭 밖에 있는 이들을 보면서도 말이다.
적절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나의 수고와 노력은 헛된 듯이 느껴졌다.
그렇게 불만이 차고 차고 차올라 힘겨울 무렵
자비로운 그분의 은총 덕에 깨닫게 되었다.
부당하다 느끼는 이 감정은,
온전하지 못한 뿌리에서 비롯된 것임을…
주님을 위해, 교회를 위해…라고 말했지만
사실 나는, 나를 위해 일한 것이었다.
‘뙤약볕 아래에서 온종일 고생’만 했다는 건,
나를 위한 수고가 그만큼 힘들었다는 말이었다.
처음의 내 마음, 처음의 그분과의 약속,
그것은 사라지고 온전히 ‘나’만 남아버리니
모든 것이 다 달라져 버렸다.
회복으로 가는 길은 하나 뿐이었다.
‘회개’
그분께서 나를 사서 포도밭으로 데려오셨다.
그럼 된거다. 그걸로 족하다.
뙤약볕의 수고는 그 자체가 값진 은혜다.
내가, 그토록 자격 없는 내가,
그 수고에 동참할 수 있다는 건
고생이 아니라, 특혜다.
그제서야 비로소
이 말씀을 이해하게 되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위하는 특권을,
곧 그리스도를 믿을 뿐만 아니라
그분을 위하여 고난까지 겪는 특권을 받았습니다.
필리 1,29
수고와 희생과 고난이 부담스러운게 아니다.
그 조차도 받지 못하게 될 것이 두려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