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전 주애가 첫영성체를 했다.
어찌 안아줘야 할지 모를만큼, 작고 연약했던 갓 태어난 모습이 아직도 선명한데, 어느새 이렇게 커서 성체를 영할 수 있게 됐다. 첫영성체를 하던 그날도 물론 큰 감동이 있었지만, 지난 주일 미사에서 영성체 하는 주애의 모습을 보면서 태어나 처음 느끼는 격하고 벅찬 감동을 느꼈다.
가슴이 터질거 같았다.
정말 미쳐버릴거 같은, 형언할 수 없는 격한 감정이 솟았다.
감동과 행복이 폭발할거 같아 주체할 수 없을 정도였다.
언제 이렇게 컸을까. 정말 잘 자라주었다.
부모로서 아무것도 안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대단하게 한 것도 없는데,
부모의 씨앗 보다 더 풍성히 자라주었다.
격한 감동은, 격한 감사를 낳는다.
무엇이길래.
감히, 내가 무엇이기에 이리도 큰 결실을 보는가.
지금껏 짧은 삶이지만, 이토록 큰 열매를 보니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정도로 감사하다.
누구나 다 하는 흔한 첫영성체이기도 하지만,
내 생에 이룰건 다 이룬 느낌으로.. 그정도의 벅참이다.
좋은 땅에 뿌려진 씨는 이러한 사람이다.
그는 말씀을 듣고 깨닫는다.
그런 사람은 열매를 맺는데,
어떤 사람은 백 배, 어떤 사람은 예순 배,
어떤 사람은 서른 배를 낸다.
(마태 13,23)
30배, 60배, 100배가 아니라
백만배의 열매를 낸 거 같다.
분명, 나는 좋은 땅이 아니었다.
주님의 씨앗을 내동댕이 치며 버리던 사막같은 놈이었다.
만약 씨 뿌리는 사람이,
단 한번만 씨앗을 뿌리는거였다면
내 삶에 이런 열매를 볼 수 없었을거다.
새들이 와서 먹어 버리고,
뿌리가 없어 말라 버려도,
열매를 낼 때까지 다시 찾아와 씨를 뿌려 주신다.
주님은 포기가 무엇인지 모르시는 분이다.
그분이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의 내 삶이 있고
터질것 같은 행복의 결실을 본다.
하느님이 포기하지 않는데,
우리가 포기 할 이유가 있을까.
쟨 안되겠다…라고,
포기하고 싶은 사람들이 보이더라도
포기하지 말자. 포기는 복음의 언어가 아니다.
하느님은 그 한 사람을 놓치지 않으시니까.
나 같은 이를 살리신 분께서,
누군들 못 살리시겠는가.
+하느님,
길 잃은 사람들에게 진리의 빛을 비추시어
올바른 길로 돌아오게 하시니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하는 모든 이가
그 믿음에 어긋나는 것을 버리고 올바로 살아가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