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의 소리를 듣고 계시나요?

최근에 카톡을 통해서 장문의 좋은 글을 받았습니다. 빌게이츠가 쓴 편지라며, “코로나바이러스의 14가지 교훈”이라는 제목으로 한국어로 번역된 글은 물론 영어로 된 원문까지 여기저기서 퍼다 날라주었습니다.

이곳에 본문을 다 담지는 않았지만, ‘빌 게이츠’ 답게(?) 우리에게 좋은 생각의 기회를 제공해 주는 훌륭한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아무 생각없이 다 읽고나서, 불연듯 ‘왜 빌 게이츠가 이런 편지를 썼을까?’ 싶어서 어느 매체를 통해 발표된 건지 찾아보고는 알게 되었는데요. 바로, “가짜뉴스”였던 겁니다.

사실 요즘 개인에게 혹은 여러 그룹카톡에서 정말 많은 뉴스와 정보들을 받고 있습니다. 무엇을 먹으면 코로나 바이러스 예방에 도움이 되는지, 무엇을 먹으면 기적처럼(?) 코로나 바이러스를 이길 수 있는지… 이 정도의 내용은 ‘일상에 유익한 건강 정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해외 OOO 나라에 교포사목 가신 신부님이 코로나 때문에 생사의 위기에 있다 / 유학생으로 가신 학사님이 코로나에 걸렸다”는 소식과 함께 기도를 요청하는 글도 많이 받았습니다.

이것 뿐만 아니라, 교황님께서 긴급하게 ‘이러이런 기도를 바쳐야 한다’라고 말씀하셨다는 문자도 받았고, 어느 나라의 어떤 신부님의 아름다운 희생 이야기, 어느 성당에서 성모상에서 일어난 기적 이야기, 그 외 다양한 감동적인 이야기 등등.. 그냥 내용으로만 보면 지금의 심란한 시기에 감동을 주는 좋은 이야기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 중에는 실제 이야기도 있지만 많은 경우가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또는 왜곡된) 이야기들이라는 겁니다.

“진짜든 가짜든 감동을 주고 깊은 생각을 하게 만들어 주었으니 좋은거 아니냐?”

어떤 이들은 이처럼 말하기도 하는데, 나쁜 이야기 보다는 좋은 이야기가 낫긴 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거짓이 진실처럼 꾸며지고 왜곡되는 것이 결과적으로 괜찮을 수는 없습니다. 신학 시간에 배운 내용인데, 교회 전통적으로 ‘선’이 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조건이 모두 갖추어져야 한다고 합니다. 첫째는, ‘지향’이 선해야 하고 둘째는 ‘방법’이 선해야 하며 마지막으로 ‘결과’가 선해야 합니다. 좋은 뜻을 가지고 나쁜 방법으로 좋은 결과를 낳았다면 그것은 선이 될 수 없습니다. 거짓을 진실인듯 속여서 감동을 준 것은 선한 결과가 될 수 없는 것이죠.

그럼, 이러한 가짜뉴스가 우리 신앙에 어떤 악영향을 끼칠까요? 아무리 좋은 내용이라고 하더라도, 왜곡되고 날조된 거짓으로 만들어진 ‘거짓 평화’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신뢰’를 깨뜨리게 됩니다. 저는 이것이 바로, 교묘한 ‘악의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런 교묘한 속임수에 걸려서 거짓 평화를 진짜라고 착각하기도 하고, 불필요한 두려움으로 불안해 하기도 합니다. 기도를 열심히 하였지만 그 힘이 내게 평화를 주지 않는다면, 나의 눈과 나의 마음 그리고 나의 귀가 어디에 열려있는지를 돌아봐야 할 때라는 신호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놀랄 일이 아닙니다. 사탄도 빛의 천사로 위장합니다. (2코린 11,14)

시기가 어수선하고 힘든 만큼, 사람들에게 유익한 정보를 나누고 싶은 ‘선한 마음’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공인되지 않은 거짓 정보가 사실인 듯 퍼져가다보면, 아주 미세하지만 서서히 신뢰에 균열이 가게 됩니다. 그리고 꼭 거짓이냐 진실이냐의 구분을 떠나서, 혼란한 이 시기에 정보들을 공유하는 목적에 대해서도 잘 생각해봐야 합니다. 정말로 필요한 내용을 전하는 것인지, 불필요한 이야기로 혼란과 두려움을 낳는 것은 아닌지 말입니다.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누군가는 대수롭지 않게 볼 수 있어도 누군가에겐 심각한 영향을 끼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세상 일에 무관심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두려움을 줄 수 있으니 안 좋은 이야기는 듣지 말자는 것도 아닙니다. 이 넘치는 정보의 세상 안에서 우리가 바라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그 많은 정보를 받아들이는 우리의 태도와 가치관은 무엇인지를 점검해 봐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혼란함 속에서 외면해서도 안되지만, 세상이 나를 뒤흔드는 소리와 거짓의 파도에 영혼이 휩쓸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과연 우리는 누구의 소리를 듣고 있는 걸까요? 참된 평화를 주시는 분, 진리이신 예수님의 목소리를 듣고 있는지 아니면 세상의 온갖 혼란스러움과 공포와 거짓에 선동되고 있는건 아닌지.. 저는, 이쯤에서 한번 진지하게 성찰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는 누구의 소리를 듣고 있는 걸까요?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나는 그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른다.
(
요한 10,27)

2 Replies to “누구의 소리를 듣고 계시나요?”

  1. Thomas bro says:

    언어의 단식.. 확 와닿는 표현이네요. 저 또한 입의 침묵이 아니라, 내면의 침묵이 너무 필요한거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ㅠㅠ

  2. 저부터도 언어의 단식이 필요하다 생각한 요즘이었습니다.. 분별없이 정보를 받아들이지도 말구요.. 토마스님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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