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적인 웅장함

The beauty of the temple is not important. The purpose for beauty should not be for appearance but for glory of God. I hope and pray for that the ‘beautiful vanity’ inside me will collapse.

몇몇 사람이 성전을 두고, 그것이 아름다운 돌과 자원 예물로 꾸며졌다고 이야기하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너희가 보고 있는 저것들이,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고 다 허물어질 때가 올 것이다.” (루카 21:5-6)

성전의 외적 아름다움. 웅장함과 화려함, 크고 편리한 시설, 사실 이러한 것들이 눈에 먼저 다가오며 감탄을 끌어낸다. 그리곤 이 화려함을 장식하는 멋진 역사와 또 기부자들에 대해 블라블라 하게 되는데. 상당히 자주 그 이면에 부끄러운 일들도 많다.

한 예로 오래 전의 일이다. 미국 어느 지역의 주교좌성당이 신축을 하기로 했는데, 그 과정에서 그 일대의 노숙자들을 내쫓아낸 이야기. 물론 그들은 길거리에 ‘불법’으로 거주하고 있었으니 내쫓는 것이 부당한 일은 분명 아니다. 허나, 빈자를 내쫓고 ‘크고 아름다운 성전’을 자랑하는 모습을 보면, 차라리 몰랐으면 감탄만 했을텐데 왠지모를 역한 기분이 들곤 한다.

몸이 불편한 이들의 편의를 위해, 또 어르신들이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 따뜻하게 성전에 머무르며 기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성전의 시설은 기능적으로도 위생적으로도 개선이 필요하다. 그리고 성음악을 위해 또 성미술의 요소들을 고려하는 것도 그것들이 신앙에 유익한 요소가 되기에 중요한 일이다. 그런데 한편, 너무 편의와 시설, 화려함에 집중해 크고 웅장한 성전을 짓느라고 과도한 ‘비용’을 낭비하고 있진 않은지.

오늘 복음에서, 우리 주님은 최고의 아웃사이더답게 초치는 소리를 하신다. 성전이 예쁘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한테, ‘다 허물어질거다’라니… 속이 꼬여도 단단히 꼬인 사람으로 보였겠지? 허나 아마도, 아름다운 돌과 자원 예물로 꾸며진 성전, 주님께서는 그 외형에 감탄하길 바라시는게 아니었던거겠지. 본질은 외형이 아니라, 그 안에 들어있는 내용일테니까. 그 아름다움의 목적은 성전을 꾸미기 위함이 아니라, 하느님의 영광을 자랑하기 위함이어야 했다.

‘최초/최대’라는 수식어가 자랑이 아니라 부끄러움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잊어선 안되겠다. 규모가 최대여서 그걸 비우는 시간마저 최대로 걸릴지도 모르는 일이니. 차라리 다 무너지는게 은총일 수도 있다. 박해자, 적을 통해서라도.

 

내면의 성전인 내 안에 잔뜩 쌓인 ‘아름다운 허영’이 부디 확 무너져 버리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