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축일

(교황께서 산조바니로톤도에 있는 피에트렐치나의 성 비오 신부의 무덮 앞에서 기도하는 모습)

2차 세계대전, 2차 바티칸공의회, 세상과 교회가 격변의 시기를 지내는 무렵에 그는 교황이 되었다. 그렇게 약 30년 가까운 긴 시간을 교황으로 살며 온갖 고통과 어려움 속에서 그분은 흔들림 없는 믿음을 보여주셨다. 총격을 당해 목숨이 위태로웠으나 기적적으로 살아난 후, 저격범을 찾아가 면담을 하며 그를 용서하는 위대한 사랑을 보여 준 일은 영웅적 사랑을 잘 드러내는 일이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엄청난 모범으로 나날이 인기가 올라가지만, 나에겐 요바2 교황님이 아마도 평생 내 넘버원 파파일거 같다. 나의 긴 냉담이 끝나갈 무렵인 2005년 군복무 시절,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죽음을 거기서 접했다. 생전엔 관심도 없던 그분의 삶이, 훗날 내 신앙에 이리도 큰 영향을 줄 줄은 그땐 미처 몰랐다. 내 신앙의 뿌리에 큰 영향을 끼친 몇가지 포인트가 있었는데, 그 때마다 교황님이 그 자리에 있었다.

그분은 성모 신심이 대단한 분이었다. 나에게 성모신심에 있어 큰 영향을 준 책이 몽포르의 성 루도비코 마리아 그리뇽의 논문인 ’성모님께 대한 참된 신심’인데, 바로 이 책이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도 사랑하던 책이었다. 그분은 신학생 시절때부터 뒷주머니에 이 책을 늘 가지고 다녔다고 회상했었다. 이 사실이 책에서 얻은 영감을 신뢰할 힘이 되어 주었다.

누구에게나 특별한 친구인 성인이겠지만, 피에트렐치나의 성 비오 신부님을 시성한 것도 이 교황님이셨다. 교황께서 신학생이던 시절에 산조바니 로톤도에 찾아가 비오 신부님을 만났고 그분에게 고해성사를 받았다고 한다. 비오 신부님은 이 신학생을 만난 후 교회의 큰 교황이 될 것을 알아보고 예언하셨다 한다.

그분은 한국과도 인연이 있다. 전두환에 의해 갇힌 김대중 전대통령의 석방을 위해 전두환에게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그리고 한국에 두번이나 방문하셨고 한국의 순교자들을 시성하셨다.

교회 역사상 가장 많은 나라와 사람들을 만났던 이 교황은, 건강이 좋지 않음에도 <교황은 바티칸에만 머물러 있어선 안된다>며 가능한한 많은 이들, 그리고 모든 ‘가정’을 찾아가고 싶다고 그렇게나 자주 말씀하셨다. 그분은 가정과 성에 관해서 깊은 통찰력과 관심과 사랑을 가지고 계셨으며, 이를 매우 중요하게 여기시며 이에 관해 자주 가르치셨다. 본인 이름의 대학, 그리고 ‘몸의 신학’이 대표적인 그 결과겠다.

세상을 향해서는 약자와 평화, 정의를 외치며 진보적인 태도를 자주 보이시면서도 교회 안에서는 진리를 수호하고 왜곡되고 세속화 되어가는 풍조에 저항하며 올바르게 보수적인 태도로서 균형 잡힌 삶을 보여주셨다. 또 그분의 신학적 깊이는 어떠한가! 특히나 회칙 ‘신앙과 이성(Fides et Ratio)’은 개인적으론 그분의 놀랍고 위대한 업적이라 생각한다. 이 책이 나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주었던지! (힘들게도 했지만….)

이런 훌륭한 분과 동시대를 살았음에도 전혀 그 앎을 누리지 못하다가, 그분이 떠나고서야 나는 뒤늦게 그분의 가르침과 흔적으로 신앙을 열심히 쌓아왔다. 그리고 어느새 그분은 교회의 성인으로 공경을 받으며 신앙의 모범을 여전히 보여주고 계신다.

오늘 그분의 축일을 맞으면서, 다시 한번. 감사하는 마음으로, 아직도 한참 배워가야 할 그분의 가르침과 모범적 삶을 계속 묵묵히 따르자며 다시금 다짐한다. 특별히 가정과 사랑과 생명, 성에 관해 중요하게 여기셨던 그 마음, 이 시대에 가장 위협받고 있는 그 보물을 지키기 위해…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여, 저를 위하여 우리를 위하여 빌으소서. ?

“나는 행복합니다. 그대들도 행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