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실

왜 하늘을 쳐다보며 서 있느냐?
사도 1,11

그동안 어딜 보고 있었나. 그분과 가까이 있다 싶었지만 어느새 또 멀찍이 떨어져 섰다. 언제쯤 바로 설 수 있을까. 그분 아닌 다른 것으로 채우려 하니 온종일 퍼 담아도 채워질리가 없다. 답답함의 원인이 이거였구나. 꽤 걸렸다. 그만큼 성찰에 소홀했단 증거. 무엇보다, 기도에 게을렀던 탓이다. 형식적인 기도만 나불거렸지, 언제든 만나뵐 수 있는 그분을 향하지 않고, 갖은 핑계를 대고 섰다. 그러니 이 지경까지 왔지.

하느님, 저를 구하소서. 목까지 물이 들어찼습니다.
시편 69,2

몰랐다. 내가 그랬나 보다. 별 것도 아닌 주제에, 혼자 심각하게 고민하고 부담을 안고 있었나 보다. 선교라는 행위를 위해 날마다 고민하고 고민하는 것이, 내 삶에 가장 중요한 과제로 여기고 있었나 보다. 숨이 콱 막힌 이 심연 같은 곳에서, 한줄기 빛처럼 그분의 소리가 울린다.

“토마스! 그 일에 열심 하지 말고, 그저 나에게 충실해.”

주제파악이 그나마 내 장점이었는데, 요즘 그 기능이 약해졌다. 뭔가를 하려 애쓰기 보다, 그분을 바라봐야 했다. 그러면 그걸로 모든건 자연히 되는 것을. 아무리 퍼주고 싶어도, 내가 채워져 있지 않으면 결국 그분이 아니라 나를 퍼주게 된다. 그러니 피조물에게서 무언가를 바라며 마음으로 구걸하고 있는게 아닌가. 내가 아니라 그분을 퍼주어야 한다. 그분 말고는 어떤 것도 나를 채울 수 없고, 또 다른 이에게 줄 수도 없다. 그분 외에는 아무것도.

내 영혼아
오직 하느님을 향해 말없이 기다려라
그분에게서 나의 희망이 오느니!
시편 62,6

 

정말 정말. 너무나도 오랜만에. 찬바람 속에서 담배를 한대 피고 싶은 기분이다. 물론 그냥 기분만.

 

+하느님,
나의 행함이 아닌
주님의 능함이 내 삶에 임하도록.
그렇게 계속 당신으로 채울 수 있게.
제가 다시 오로지 당신께만 충실하겠나이다.
이끄시고 지키시고 채우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