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은 하나다.

오늘 전례 속, 놀라운 말씀의 배치.

나를 의롭다 하시는 분께서 가까이 계시는데 누가 나에게 대적하려는가?
이사 50,8

하느님 마음에 드는 것은 내 쪽에서 조건이 되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하느님의 의지 때문이다. 허나, 그분의 의지를 믿는다고 만사 장땡은 아니라는 것. ‘하느님이 날 사랑하시니까!’라는 인정만으로는 믿음을 확정할 수 없다.

누가 믿음이 있다고 말하면서 실천이 없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야고 2,14

그분의 사랑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그 사랑 때문에 ‘나도 그렇게 되고자 하는 것’으로 연결되어야만 한다. 그것이 곧 ‘사랑의 속성’이라고.. 말로는 믿는다 해도 삶에서 그 믿음이 거짓으로 드러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물론 어거지 실천으로 가짜를 진짜인냥 증거하는 것도 거짓임은 마찬가지지만.

결론은 어거지로 믿는다고 고백하는게 능사가 아니며, 무식하게 착하게 되려 애쓰는 것도 믿음의 행위는 아니라는 거다. 그럼 결론이 뭔가. 그게 오늘 복음.

누구든지 내 뒤를 따르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마르 8,34

무식한 ‘믿쓥니다’가 아니라, 어설픈 ‘챡하게 살쟈’가 아니라, “예수님을 닮는 것”. 그것이 믿음과 실천을 고루 담은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지향점이다. 허나, 알기는 쉽지만, 살기는 어렵다. 허벌나게.

 

주여, 오늘도 이렇게 나를 버리지 못한 채 뻣뻣한 삶이이었네요.

죽음의 올가미가 나를 에우고
저승의 공포가 나를 덮쳐 나는 고난과 근심에 사로잡혔네.
이에 나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불렀네.
“아, 주님 제 목숨을 살려 주소서.”
시편 116,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