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그랬다. 노래하고 찬양하는 자리는 사람들이 좋아하지만, 기도하고 묵상하는 자리는 꺼려한다고. 신나는 건 좋아하지만 지루한건 싫어한다는 얘기겠지..? 뭐 그런거 같기도 하다.
멋진 사람들이 정말 많아진 세상이지만, 거룩한 사람들은 사라져가는 세상이다. 재밌고 즐거운 일에 열광하는 세상이지만, 의롭고 정직하고 순결한 일은 유치한 일로 치부되는 세상이다. 거룩함의 내어주는 희생과 겸손된 비움의 가치 보다는 즐거움, 행복, 기쁨 등의 만족적 가치에 더 열광하는 세상이다.
세속이든 교회든 다름은 없다.
아니, 뭐 따질 것도 없이 나도 그렇다. 사실 거룩함이 주는 부담은 날이 갈수록 무거워지는게 사실이다.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점점 더 세속에 섞여있고, (그렇다고 도망칠 수도 없고) 타협하지 않으려 하지만 그 싸움에서 때때로 패하기도 하는 자신의 나약함과 한계와 부족함 그리고 죄된 마음과 모습을 보면서, 나에게 과연 거룩함을 지향한다는 것이 타당이나 한것인가 의문이 들 때가 많다. 이런 꼬라지를 지닌채로 거룩함을 지향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부끄럽고 민망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거룩함이라는 말 자체를 꺼내는 것 조차도 죄스러운 느낌이다.
거룩함이 뭐기에 우리는 이토록 부담스럽고 거북하고 때론 죄스럽고 부끄럽게 느끼는 것일까? 사실은 간단한거다. 예수님처럼 되는 거다. 예수님을 닮는 것. 신성한 척 하는게 아니라, “What would Jesus do?”
하지만 지속적으로 희생과 양보와 친절을 베풀다 보면 호구가 된다.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가 된다지 않던가! 그러니 나를 보호하기 위해 희생도 양보도 친절도 선행도 정도껏 선을 그어야 한다. 참으로 야박해 보이지만, 상처 입고 고통스러운 것보다는 낫다는 것이 요즘 분위기다. 아주 틀렸다고 할 수는 없다. 자기보호를 무조건 이기적이라고 할 수는 없으니까.
그런데! 그것이 절대 옳은 것이라서 모두 그대로 살아간다면, 이 시대에 영웅적 의로움이라는 것은 어떤 형태를 지니는 삶이어야 할까? 그냥 톡 까놓고… 왜 호구가 되면 안되는걸까…? 왜 상처를 입으면 안되는걸까…? 아니 그 보다도…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어떤 삶인걸까…? 그 분을 닮는다는 것은… 호구가 되어서는 안되는 것일까…?
세계 최고의 호구를 우두머리로 둔 집단에서, 그 호구를 믿고 따르며 그 호구처럼 ‘호구화’ 되겠다고 따르는 우리가 기피하는 것은 ‘호구가 되는 것’이라는 아이러니. 하지만 호구가 되고 싶지 않은 것도 솔직한 심정이다. 결론은 이거다. ‘내가 왜 호구가 되어야 하는데?’ 그러게 말이다. 그런데 이 고민을 하고 있자니, 깊은 곳에서 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예수님은 뭐하러 따르려는건데…? 안 따라도 되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