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메모

오래전에, 한 형제님이 피정 미사 중에 사람들 앞에서 소감을 발표하며 나를 거론한 적이 있다. 프로그램 중 우연히 펼쳐진 내 성경책을 보게 되었는데 많은 메모와 밑줄 그리고 낡은 성경책 모습을 보면서 자신도 하느님 말씀을 가까이 대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누군가에게 성경의 중요성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에 기쁘고 감사하면서, 한편으론 내가 잘난척을 하듯 성경으로 과시를 한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수치스럽기도 했었다. 그럴 의도로 말씀을 대한 적은 없었지만, 잘난척 유혹은 늘 내 친구였기에, 말씀으로 잘난척 하게 될까봐.. 그래서 그 이후로 지금까지 성경에 밑줄이나 메모를 하지 않는다. 뭐 꼭 그것 때문만은 아니라, 어느새 메모와 밑줄이 계속 그 구절에 집중하게 만드는 방해거리가 된다는 것도 한 몫을 하기도…

은에서 불순물을 없애야 은장이가 쓸 재료가 나온다.
잠언 25:4

불순물을 없애야 하는데, 자꾸만 만들고 있는거 같다. 처음엔 기쁨이고 감사였고 깨달음이었는데, 어느새 그 새것 마저 헌것이 되어간다. 그러면 버려야 하는데, 자꾸만 쌓아두고 그것에 먼저 시선이 간다. 익숙하고 편안하고 좋은 것에 안주하려는 마음, 그래서 자꾸 떠나려 애쓰고 바꾸려 애쓰지만, 나이가 들수록 귀찮음을 자주 느끼면서 피곤함을 핑계로 익숙한 것을 우선적으로 취한다. 불순물이 꽤나 빠진거 같다는 착각에 취해 혼자 뿌듯해 하지만, 말씀으로 들이대 보면 불순물이 더 쌓여있다. 말씀을 읽으면서도 밑줄에 자꾸 눈이 가고, 묵상했던 구절과 내용이 먼저 떠오른다. 영적꼰대가 되는 느낌… 성경을 새로 사야하나. 하하하… 천연가죽으로 만들어진 성경이 나온다면 새로 살 의향은 있다마는…(왜 한국교회는 싸구려 인조가죽으로 성경 표면을 덮는걸까?)

영어 공부를 좀 제대로 해서, 몇년째 ‘새것처럼 깨끗한’ 영어성경을 붙잡고 살게 되기를 … 간절히, 아멘 (욕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