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밤 꿈에 나타난 은사님이신, 이영춘 신부님

은사 신부님이신, 이영춘 세례자요한 신부님께서 지난밤 꿈에 나타나셨습니다. 왜 뜬금없이 꿈에 나타나 여러 대화를 나누게 되었는지 아리송하지만, 꿈을 꾸는 내내 기분이 들 뜨고 신이 났었네요. 신학원 졸업 후 종종 들었던 후회 아닌 후회는, 너무 빠른 나이에 신학 공부를 했었다는 것이었는데 더 늦었으면 이영춘 신부님을 뵙지 못했을걸 생각하니, 그 후회가 쏙~하고 들어가 버립니다.

2008년 9월 26일 교회사 야외수업 (절두산 성지)

교회사 교수 신부님이셨는데, 정치적으로 굉장히 진보적인 성향이신데다 수업 중에 정치적 발언을 많이하셔서 분위기가 쏴ㅡ해지는 일이 왕왕 있었습니다. 2MB(이명박) 정부가 시작된 시기에 학기가 시작되었고, 2학년 때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시기이기도 해서…

사실 처음엔 저도 좀 불편했습니다. 아니 아쉬웠지요. 공부하려고 왔는데 자꾸 딴 소리를 하는거 같아서 말이죠. 그때는 배움의 시간이 빼앗기는게 싫어서 답답했습니다. 물론 이 생각은 얼마 지나지 않아 바뀌었지만요. 이 신부님의 가치관과 신앙을 조금씩 알아가면서, 어느새 외로운 예언자 예레미야가 생각나면서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역사신학을 유학하신 분이라 그런지 비판적 시각이 꽤 강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점이 참 좋았습니다. 교회의 역사와 모습을 무조건 은혜롭게 포장하고 해석하는 것은 믿음의 눈이 아니라 그냥 왜곡이라고 생각했던 저였으니까요. 그분도 교회사를 가르치시면서 잘못한건 객관적으로 평가하시며 신랄하게 비난하셨습니다. 그것이 교황이든 추기경이든 주교든 누구든 말이죠. 하지만 그렇다고 교회를 비난하자는 것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성령의 역사가 무엇인지를 교회의 어둠을 통해서 발견하게 되는거니까요.

포장을 매우 싫어하셨던 분. 역사신학을 전공한 사람은, 교회의 어둔 부분을 잘 알고있기에 비판적인 경향이 눈에 띄어서 교회의 어른들이 좋아하지 않아 고위직을 갖기가 어렵다고 노골적으로까지 말씀하셨던… 하지만 누구보다 교회를 사랑하시고 자랑스러워하시며, 진실을 지키고 개선된 역사를 이끌어가고자하는 열망이 강하셨던 분… 명동거리와 절두산까지 야외 현장에서 목청 높혀 생생히 역사를 가르쳐 주셨던 분…

교회사 수업을 마쳤을 때.. 아니 졸업을하면서 언젠가 꼭 역사신학을 전공하고 싶다고 다짐하게 된 것은 투병 끝에 떠나가신 이영춘 신부님 때문이었습니다.

신부님께서는, 2012년 2월 3일 선종하셨다.

비록 감사하다는 인사 한번 제대로 못 했지만, 주님께서 내 이 마음이 전해지게끔 해주셨으리라 믿습니다. 기대했던 전례학 수업에서 (안식년 때문에) 정의철 신부님을 만나지 못한 아쉬움이, 생각도 못했던 교회사를 통해 신학의 관심사를 완전히 바뀌게 된 것은 섭리라고 확신합니다.

꿈에서 뵈서 그런지 더더욱 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