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깊이 더 깊이 더 더 깊어지길 원하셨다.

지난 주 월-화-수. 2박 3일간 ICPE의 School Of New Evangelization (S.O.N.E.) 프로그램에 참여했습니다. 원래는 4박 5일의 프로그램인데, 일정 중 3일만이라도 참여하고자 중간에 들어갔습니다. 독일에서 한국으로 휴가를 온, Sieglinde와 함께 우리 세 가족이 모두 참여했습니다.

사실, 처음엔 와이프를 위해 시간을 갖기를 원했었습니다. 육아의 시작과 동시에 공동체를 떠나게 된 이후, 아이를 케어하느라 온전히 하느님께 집중하기에는 상황적 한계가 있어왔기에, 그러한 갈망과 갈급함이 수년간 지속된 아내를 위해서 온전히 주님 앞에 머무르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주애를 내가 돌보고 3일간 피정에 다녀오면 어떨까 하고 계획을 했는데, 여차저차하여 일단 한번 우리 모두 참여해보자!-하고 질러버렸습니다.

그러고보니, 오랜 시간 봉사와 활동을 하다보니 참가자로서 어떤 프로그램에 참여한다는 게 참 오랜만이었네요. 개인적으로는, 활동을 통해 그 가운데서 은혜를 경험하고 또 프로그램을 준비하면서 자신을 돌보는 시간을 보내기도 했고, 간혹 개인 피정이나 혼자 성전에서 기도하기는 자주 했지만, 이렇게 짜여진 프로그램 안에 흐름을 따라가는 것은 참 오랜만이었습니다.

중간에 끼어들긴 했지만 낯설지 않은 분위기와 흐름의 프로그램이라 쉽게 흐름을 따를 수 있었네요. 사실 흐름을 따르기가 어려울 이유도 없었습니다. 그만큼 하느님의 관계에서 그리고 신앙적 삶에서 (훌륭하다 할 순 없어도) 그리 느슨하게 살진 않았으니까요. 그 동안 하느님과의 관계에 딱히 심각한 문제는 없었습니다. 늘 말씀과 기도 안에서 그분의 목소리를 듣고 응답을 들어왔으며, 크고 작은 죄 가운데에서 회개하고 용서 안에 머무르려 애쓰면서 큰 문제 없이 ‘좋은 삶’을 유지하려 노력했으니까요.

그렇게 프로그램을 참여하면서 감사하게도 용서와 화해라는 큰 은혜를 다시 경험했습니다.

‘아.. 주님께서 이것을 위해 나를 부르셨구나..’

오랜만에 이런 뜨거운 은혜를 경험하면서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여전히 나는 어렵지 않게 이런 은혜를 경험할 수 있었고, 그것이 한편으론 안심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 동안 주님과의 거리가 멀어지진 않았으니까…’

그렇게 일정을 따라가는 중에, 한 가지 눈에 띄는 것이 있었습니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다양한 사람들 중에 한 남녀 커플이 계속 눈에 들어왔습니다. 같이 이곳에서 하느님을 찾고 기도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멀찍이서 바라보면서 훈훈하고 흐뭇하고 뭐 그런 느낌이 들었습니다. 종종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오래 전의 나와 사브리나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정확히 8년 전 이맘 때였네요. 그때 막 정식(?)으로 연애를 시작하였고, 그 무렵 ICPE에서 주관했던 PCS와 LS라는 프로그램에도 참여했었죠.

*2007년 8월. ICPE P.C.S.(Pastoral Counselling School) 프로그램 참여 중의 내 사진;;;*

​그 때 우리는 서로를 알아가며 하느님을 향해 달려가느라, 쉬는 시간에 틈만 나면 서로 신앙과 삶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고 밤에는 같이 기도하고 대화하며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지냈습니다. 하느님은 그런 우리 커플에게 많은 은혜를 허락해 주셨고 우리를 축복하시는 주님의 사랑과 섭리를 경험하던 시간을 보냈지요. 이미 부부가 되어 열심히(?) 살아가는 지금, 성가정을 이루고 싶다는 그 커플을 보면서 옛 생각이 자주 떠올랐습니다.

‘맞아. 그땐 그랬지. 정말 잠도 안자고 기도하고 나눔하고.. 난리도 아니었는데…’

이런 회상을 하다보니 저녁 전례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안수와 축복 기도 시간이었는데, 무엇을 청할지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이래뵈도 나는 꽤 성장했고, 하느님과의 관계도 원만하며, 내 삶에 심각하고 커다란 문제는 딱히 보이지 않으니, 주님 앞에 무엇을 청해야 할지 잘 모르겠더군요. 어찌보면 참 감사하기도 한거 같은데, 교만한건지 아니면 열정이 없는건지 혼란스럽기도 했습니다.

‘주님, 저희의 길을 비춰주세요. 저에게 확신을 보여주세요.’

이렇게 기도하며 준비하고 있었는데, 마침 내가 간절히 청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느님, 제가 왜 그땐 그랬었지-라고 예전을 회상해야 하나요?
그때 그랬던 삶이 아니라, 지금도 여전히 같은 삶을 살아야 하는건데요.
주님, 지금 저에게 필요한 것은 이것이네요.
예전의 삶으로 돌아가고 싶은게 아니라,
예전보다 더 뜨겁고 더 가깝게 주님과 만나는 그런 삶으로 저를 이끌어주세요!’

확실했습니다. 2박 3일간 주님께서 주시고자 했던 것은 용서라는 체험만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다른 것을 위한 하나의 관문이었습니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더 깊은 것을 향한 열망과 그것에 갈급해하지 않았던 무뎌진 마음에 대한 회개였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또 다시 여기에 응답하셨습니다.

그분은 내게 하나의 새로운 이미지를 보여주셨고, 과거의 하느님이 아니라 현재의 하느님, 그리고 과거의 관계보다 더 깊은 새로운 관계로 나를 초대해주셨습니다. 관계에 딱히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적당히 친하게 지내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이상 어떠한 것도 생각하지 않았던 것은 큰 교만이었습니다. 나태하고 게을렀던 거지요.

최근 2,3년동안 활동만 하면서, 적당히 자신을 돌아보며 적당한 기준에서 이탈하지 않으려고는 했지만 더 깊은 곳을 향한 갈망이 내 안에 없었던 것이 바로 문제였습니다. 하느님을 알아간다는 것에는 한계도 끝도 없기에 적당한 관계와 앎이란 것은 존재할 수 없는 것이죠. 어쩌면 이것은 ‘관계’가 아니라 ‘멈춤’이었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렇지만 지금 주님은 저의 삶을 부수어 버리셨습니다. 관계를 없애서 처음으로 되돌리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보내는만큼 관계도 계속 깊어져야 한다는 것 말이지요. 그렇게 회개와 깊은 사랑의 부어짐을 경험한 뒤 새벽까지 와이프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정말 정말 오랜만이었네요.

간간히 신앙을 나누면서도 결국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건 먹고 사는 것과 아이를 키우는 이런 삶의 현실을 챙기는 것들이었습니다. 이런 것이 일단은 너무 중요했기에, 피곤해서 그 외의 것들은 늘 미뤄지곤 했나 봅니다.

제 보물1호인 성경책에는 우리가 연애를 새롭게 시작하면서 와이프가 준 편지가 아직도 끼워져 있습니다. 그 편지에는 하느님께서 우리 커플에게 주셨던 비전, 바로 그 응답이 적혀있습니다.

*바로 그 편지!♥*

​매일 꺼내 읽는건 아니지만, 이미 부부가 되었어도 여전히 그 응답은 유효했기에 마치 매일 기억하고자하는 마음처럼 성경에 끼워두고 지내왔습니다. 그리고 이 날 오랜만에 그것을 다시 꺼내어 봤습니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들을 새근새근 자고 있는 예쁜 딸을 옆에 두고 와이프와 함께 나눴습니다.

저 혼자만 느꼈던 은혜가 아니었습니다. 조금은 느낌이 다를 수 있지만 결국 같았습니다. 하느님은 우리 하나하나를 새롭게 하시길 원하셨고, 동시에 부부로서 한몸인 우리를 더 새롭고 더 깊게 이끌어주고 싶어하셨습니다.

‘과연 우리가 흐트러지지 않고 이 마음 붙잡으며 갈 수 있을까?’

두렵고 떨리는 마음도 들었습니다. 우리가 지닌 나약함을 생각할 때 사실 이 불안은 굉장히 현실감이 큽니다. 하지만 기대하는 마음이 더 컸습니다. 이번 기회를 통해 제대로 확인한 것 같습니다. 하느님은 진정 우리와 함께 하시고, 언제든 마음으로부터 결정하고 간절히 청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우리를 새롭게 또 더 깊은 사랑으로 이끌어주실 수 있으시다는 것을… 그것은 그분께서 간절히 원하는 것이기에, 온전히 그것을 받고자 하는 갈망만 있다면 언제든지 그분은 그것을 부어주실 수 있으심을…

당장은 그래도 예전처럼 그분이 가까이 있음을 확인한 것에 안심이고, 여전히 그분은 내게 속삭이고 계심을 알 수 있어 기쁩니다. 그래서 예전처럼, 아니 예전보다 더 깊어질 것들이 기대됩니다. 어려운 길이 아니었습니다. 늘 문제의 중심에는 제가 있었네요. 삶의 가장 큰 십자가, 바로 나 자신 말이지요.

함께해준 Sieglinde가 참 고마웠습니다. 그리고 프로그램에서 만난 선교사들도… 많은 것들이 하느님의 섭리 가운데에서 너무나도 감사하게 흘러갔습니다. 간절히 원하는 것들이, 내 안에 마구마구 피어나는 이 기쁨..

짧은 시간에 이토록 큰 선물을 주신 하느님, 그분은 예나 지금이나 나에게 가장 좋은 것만 주시는 최고의 친구, 아버지, 파트너, 주님이십니다. ♥

*2007년 8월. ICPE L.S.(Leadership Seminar) 프로그램 단체 사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