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는 심장이 있고,
이 심장에는 사랑이 불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오직 사랑만이
교회의 모든 지체를 움직이게 한다는 것,
사랑은 모든 성소를 포함한다는 것…
‘예수 아기의 성녀 데레사 동정녀의 자서전’에서
사랑이 시작이요 마침이자 전부라고 하지만, 이 사랑이 가장 어렵고 힘든게 사실입니다. 그리고 무턱대고 안아주고 참아주는게 사랑이 아니라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지요. 입으로, 또 손가락 타이핑으로만 사랑하며 신앙생활을 하는건 참으로 쉽습니다. 공유 버튼 몇번이면 훌륭한 신앙의 귀한 음식을 나눠먹을 수 있는 세상이니까요. 그런데 어쩌면 이 배부름이 우리를 돼지처럼 만드는지도 모르겠네요.
가난할 땐 배가 고파 먹었지만, 이제는 맛을 음미하며 먹습니다. 적극적으로 맛있는 것을 찾지요. 모국어로 말씀을 읽게 된 것은 뒤늦었지만 큰 혁명이었는데, 이젠 온갖 잡스러운 사기꾼들마저 판을 치는 세상으로 성장했습니다. 어쨌건 여러모로 이제는 똑똑한 이들이 많습니다. 사목 일선에선 신학이고 교회법이고 교리에 빠삭한 신자들이 많아져서 사목자들이 피곤한 경우도 있다 합니다. 얼마나 힘드실지 대략 이해도 됩니다. 따지고 따지고 따지고 따지고… 생각해보면 신학 입문을 하던 시절, 저도 꽤나 여러 신부님들을 피곤하게 했습니다. 이건 뭔지 왜 그런건지 자꾸 캐묻고 질문하고 알려달라고 달달 볶아댔으니까요.
교회에 젊은이들이 없다고 난립니다. 그나마 있는 청년들이 참 고맙다던데, 과거 오만하신 일부 어른들의 모습을 이젠 청년들 가운데서도 쉽게 보는거 같습니다. 마치 나는 아닌듯 말하는 것도 우습지만, 일단 나는 이제 내가 전혀 신앙적이지도 신실하지도 않다는 걸 아니까.. 그저 냄새나는 예수쟁이일 뿐이니까..
까놓고 보면 모두 냄새가 나는데, 냄새 없는 척 하는 게 더 불쾌한 것이겠죠. 사랑으로 시작하자더니, 사랑을 쏙 빼놓고 칼 같은 혀를 들이대면서, 툭하면 가르치려고만 하는 사람… 피곤합니다. 어쩌면 제 모습이기도 하고요.
어느덧 그리스도교는 탈출기를 넘어 판관기에 들어섰습니다. 역사는 역시 돌고 도는게 맞나 봐요. 배가 부르니 판관들이 판을 치는게 아닐지… 판결할 때 치는 방망이 같은거 하나씩 들고 다녔음 좋겠습니다. 방망이 든 사람 만나면 피해다니게…
생각해보니, 데레사 성녀의 귀한 글로 시작해 놓고는 이상하게 글을 끝맺네요.